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7일(현지시간) 프랑스 남서부 오트피레네 지역의 콜 뒤 투르말레에서 점심을 함께하고 있다 [사진=EPA=연합뉴스]

[폴리뉴스 김승훈 기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5년 만에 유럽 순방길에 나서며 중국과 유럽이 밀착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시 주석은 프랑스를 방문해 마크롱 대통령을 만나 끈끈함을 과시했으며, 헝가리와 세르비아 등 동유럽에서 영향력을 재확인했다.

미국 주도의 대중국 견제가 격화되고 있는 가운데 시 주석의 이번 순방을 계기로 중국과 유럽이 보다 활발한 경제 협력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다.

시진핑-마크롱-EU 3자 회동서는 신경전.. EU "중국 공급 과잉 시장 교란"

시 주석의 유럽 순방은 지난 2019년 3월 이후 5년여 만이다. 그간 코로나19 사태와 미국 주도의 대중국 견제 강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 여러 외부 요인으로 순방이 미뤄지다 성사됐다.

특히, 이번 유럽 순방은 미국의 제재에 맞서 유럽을 돌파구로 삼기 위한 외교적 목적이 분명한 만큼 프랑스와 헝가리, 세르비아 3국과의 회담에서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5일(이하 현지시간) 오후 이번 순방 첫 방문지인 프랑스에 도착한 시 주석은 6일 파리에서 마크롱 대통령,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과 3자 회담을 진행했다.

이 자리에서는 중국의 공급 과잉에 대한 유럽의 불편한 속내가 드러났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모두발언에서 "유럽과 중국은 상당한 규모의 경제 관계를 맺고 있으나 이런 관계는 국가 주도의 과잉 생산, 불평등한 시장 접근 등으로 위협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마크롱 대통령 역시 공개 발언에서 "유럽과 중국 간 무역에서 모두를 위한 공정한 규칙을 보장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시진핑 주석은 비공개 회담에서 "소위 '중국의 과잉 생산 능력 문제'는 비교 우위 관점이나 글로벌 수요에 비춰 볼 때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중국 외교부가 전했다.

시 주석은 아울러 "EU가 중국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발전시키고 긍정적인 대중(對中) 정책을 채택하길 희망한다"며 "대화와 협의를 통해 경제·무역 마찰을 적절히 해결하고 서로의 정당한 우려를 수용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프랑스 파리 엘리제궁에서 1시간 넘게 이어진 회담 후 기자회견을 열어 "중국 정부에 구조적 과잉 생산 문제를 해결하도록 촉구했다"고 말했다.

이어 "중국은 전기차를 비롯해 제조업 부문에 대대적인 지원을 계속하는데 세계는 중국의 과잉 생산을 흡수할 수 없다"며 "공정 무역을 위해 서로의 시장에 대한 접근도 상호주의적이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날 3자 회담의 또 다른 주요 의제였던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서도 EU와 중국 간 입장차가 드러났다.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회담 뒤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침략 전쟁을 종식하기 위해 중국이 러시아에 대한 모든 영향력을 사용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이에 시 주석은 "중국은 우크라이나 위기를 조성하지도 않았고 당사자도 아니다"라며 "중국의 객관적이고 공정한 입장과 건설적인 역할은 국제사회에서 널리 인정받고 있다"고 응수했다.

아울러 "중국은 그동안 평화를 위한 대화를 촉진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해 왔다"며 "중국은 관련 당사자들과 계속 소통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시 주석과 마크롱 대통령,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의 회의 모습 [사진=신화=연합뉴스]

시진핑-마크롱 양자 회담은 시종일관 화기애애

마크롱, 유년 추억 어린 피레네 산골마을에 시진핑 초대

3자 회동에서는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으나 이후 시진핑 주석과 마크롱 대통령의 양자 회담은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마크롱 대통령은 6일 오후 나폴레옹의 무덤이 있는 앵발리드에서 의장대 사열, 중국 국가 연주 등 공식 환영 행사로 시 주석을 환대했다.

현지 언론들은 "마크롱 대통령은 세계 2위 경제대국 중국에서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엘리제궁에서 만찬을 베푸는 등 나름대로 시 주석에 대한 최상급 환대를 준비했다"고 전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7일 자신의 어릴 적 추억이 담긴 산골 마을인 프랑스 남서부 오트피레네의 콜 뒤 투르말레로 시 주석을 초대해 친교를 이어갔다.

시 주석을 맞은 이 마을은 마크롱 대통령의 외할머니가 생전 거주한 곳으로, 마크롱 대통령이 어릴 적 휴가를 보내러 종종 방문한 곳이다.

현지 매체에 따르면 마크롱 대통령은 시 주석 부부를 자신의 35년 지기가 운영하는 식당으로 초대했다. 이 자리에서 브리지트 마크롱 여사는 시 주석에게 "에마뉘엘이 아끼는 이곳에서 해외 손님을 맞은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전날 시 주석에게 샤넬 가방과 꽃병, 코냑, 중국어로 번역된 빅토르 위고의 '노트르담 드 파리' 등을 선물한 마크롱 대통령은 이날도 시 주석을 향해 선물 공세를 폈다.

지난해까지 2년 연속 투르드프랑스에서 우승한 덴마크 선수 요나스 빙에고르의 사인이 담긴 노란색 유니폼을 전달했고 아르마냑 코냑과 아인, 베레모도 선물 목록에 포함됐다.

뿐만 아니라 전날 생일을 맞은 시 주석 어머니를 위해 피레네 양모 담요도 선물했다. 마을 주민들도 궂은 날씨에도 민속춤 공연을 마련해 시 주석 부부를 환대했다.

마크롱의 이같은 환대는 '독재자'인 시 주석을 지나치게 환대했다는 비판까지 나오게 만들었다.

내달 유럽 선거에 출마한 사회당 후보 라파엘 글뤽스만은 라디오에 출연해 "위구르족을 추방하고 홍콩인과 티베트인을 탄압하는 사람은 우리의 친구가 아니다"라며 "시 주석은 우크라이나에서 푸틴의 전쟁을 지지하는 주요 인사"라고 지적했다.

프랑스 내 위구르족 출신들도 "위구르족 학살의 가장 큰 책임자인 시진핑을 마크롱 대통령이 환영한다는 사실에 분노를 표한다"며 "이는 마크롱 대통령이 우리의 뺨을 갈긴 것"이라고 비난했다.

시진핑 "더많은 고품질 佛제품 수입" 마크롱 "中기업 차별 안 할것"

4개 공동성명.. 항공·농업·식품·상업 등 약 20건 양자 협력 약속

양국 정상은 6일 정상회담에서 경제 분야 협력을 약속했다.

AFP 통신, 신화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시 주석은 이날 오후 마크롱 대통령과 파리 엘리제궁에서 정상 회담한 뒤 공동 기자회견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을 이용해 제3국을 비방하거나 '신냉전'을 부추기는 것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시 주석은 중국과 EU 간 무역 갈등에 대해선 "무역 문제의 정치화, 이데올로기화, 범 세계화에 반대한다"며 양자가 서로 "경제, 무역 협력의 핵심 파트너가 되길 기대한다"는 희망도 피력했다.

이어 "양국은 상호 이익을 옹호하고, 탈동조화(디커플링)와 산업 및 공급망 교란 행위에 공동으로 반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 주석은 "중국은 더 많은 고품질 프랑스 제품을 수입하고 '프랑스 농장에서 중국 식탁까지' 메커니즘을 촉진하길 희망한다"면서 "프랑스가 더 많은 첨단 및 고부가가치 제품을 중국에 수출하길 바란다"고도 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전쟁에 있어 중국이 보여준 그간의 노력을 치하하며 향후에도 중요 역할을 해주길 바라는 의사를 내비쳤다.

그는 "우리는 중국과 러시아 간 오랜 관계를 존중한다"며 "이 복잡한 역사를 고려할 때 중국이 모스크바에 무기 판매나 원조를 자제하고, 군사 목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 이중용도 물품의 수출을 엄격히 통제하겠다는 약속을 환영한다"고 말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무역 이슈에 대해선 "EU의 무역 정책은 긴장을 조성하려는 의지가 아니다"라며 시 주석의 우려를 불식시키려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면서 "프랑스는 중국에 더 많은 농산물을 수출하기를 희망함과 동시에 중국에 대한 시장 개방을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중국 기업에 대한 차별 정책을 시행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첨단 기술 기업을 포함해 더 많은 중국 기업이 프랑스에 투자하고 협력하는 것을 환영한다는 뜻을 나타냈다.

그는 또 "코냑 문제에 대한 시 주석의 열린 태도에 감사하다"고 덧붙였다.

중국은 올해 초 EU가 원산지인 수입 브랜디에 대해 반덤핑 조사에 착수했다고 밝혔으나 프랑스 코냑에 대한 조사를 마무리하기 전까지 세금이나 관세를 부과하지 않기로 했다.

한편, 이날 양자 회담을 계기로 두 정상은 중동 정세, 인공지능 및 글로벌 거버넌스, 생물다양성 및 해양, 농업 교류 및 협력에 관한 4개 공동성명을 발표하고 녹색 개발, 항공, 농업 식품, 상업, 인문 등 20건에 가까운 양자 협력 문서에 서명했다.

시진핑, 세르비아 도착 [사진=로이터=연합뉴스]

시진핑, 헝가리·세르비아서 동유럽 영향력 재확인

시 주석은 7일 세르비아에 이어 헝가리를 잇따라 방문한다. 두 국가 모두 중국이 집중적으로 관리하고 있는 곳이다. 중국은 헝가리와 세르비아에 각각 약 200억 달러의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시 주석은 세르비아 방문을 앞두고 현지 일간지 '폴리티카' 기고문을 통해 25년 전 미국의 세르비아 주재 중국대사관 폭격 사건을 상기시키며 "역사적 비극이 재연되지 않게 할 것"이라고 밝혔다.

시 주석이 언급한 사건은 코소보 분쟁이 한창이던 1999년 5월 7일 미국 주도 나토군이 세르비아(당시 유고슬라비아) 베오그라드 중국대사관을 폭격한 일을 가리킨다. 이 사건으로 중국 기자들과 가족 등 3명이 숨지고 부상자 20여명이 발생했다.

미국은 오폭이라고 해명했으나 중국은 고의적인 조준 폭격이라며 원인 규명과 관련자 처벌을 주장해 한동안 양국 관계는 크게 긴장됐다.

이 사건 이후 중국은 반미 정서를 공통 분모로 러시아와 더 가까워졌고 세르비아와도 꾸준히 밀착 관계를 다졌다.

세르비아 입장에서도 자국에 대한 최대 투자국인 중국과의 교류를 더욱 강화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를 반영하듯 세르비아는 최고 수준의 예우를 보였다. 알렉산다르 부치치 세르비아 대통령 부부는 7일 세르비아 수도 베오그라드의 니콜라 테슬라 국제공항을 찾아 시 주석과 부인 펑리위안 여사를 직접 영접했다.

세르비아 공군은 시 주석 전용기가 영공에 진입함과 동시에 전투기로 호위했다. 중국 오성기가 베오그라드 시내를 뒤덮었고 중국문화원 건물에는 "코소보는 세르비아이고, 대만은 중국이다"라고 적힌 플래카드도 걸렸다.

시 주석의 마지막 방문지가 헝가리인 점도 주목할만하다. 시 주석의 헝가리 방문은 2004년 이후 처음이다.

헝가리 언론 마자르 히르랍 등에 따르면 에스테르 비탈료스 헝가리 정부 대변인은 7일 "시 주석은 빅토르 오르반 총리와 타마스 슐로크 대통령 초청으로 8~10일 헝가리를 방문한다"며 "EU 회원국 중 프랑스 헝가리 2개국만 방문하는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헝가리로서도 자국 경제를 떠받치는 중국과의 관계 강화가 중요하다. 중국 기업의 헝가리 내 외국인직접투자(FDI) 누적액은 올해 말까지 300억 유로(약 44조 원)로 추산된다. 헝가리 중앙은행은 최근 "FDI 중 6분의 1이 중국으로부터 나온다"고 발표한 바 있다.

중국 입장에서도 헝가리는 유럽연합(EU) 회원국 중 가장 먼저 일대일로(一帶一路:중국-중앙아시아-유럽을 연결하는 육상·해상 실크로드) 양해각서를 체결한 나라라는 점에서 중요한 교두보다. 이에 시 주석이 이번 방문을 통해 중국이 동유럽과 중유럽에서 영향력이 줄고는 있지만 아직은 살아있다는 점을 보여주려고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헝가리가 올해 하반기 EU 순환 의장국을 맡을 예정인 만큼 중국이 EU 내부의 균열을 만드는데 헝가리를 이용할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